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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Interview-e] 일곱빛농아인교회 ‘수어 통역자’ 조유리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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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기자 wisdomble@kuc.or.kr 입력 2025.02.0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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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교회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있어요”
수어 통역자로 봉사하는 조유리 집사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시간 속에 있음을 느낀다”라고 고백한다.

약속 장소와 점점 가까워지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재림마을>에 올라오는 방송의 화면 한 귀퉁이에서 열성적으로 ‘수어 통역’을 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서중한합회 일곱빛농아인교회에서 수어 통역자로 봉사하는 조유리 집사다.


학원에서 근무한다고 해서 ‘수어’ 관련 일을 하는 줄 알았는데 몇 년 전까지 대치동에서 수학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주로 늦은 새벽까지 수업을 하는 일상이다 보니 몸이 더 버텨내지 못했다. 결국 건강에 적신호를 감지했고 큰 위기를 한 번 겪으며 쉬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1년 동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 목회하는 어느 목사님이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그는 “한국에 들어갈 테니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다. “어느 교회요?”라고 물었더니 “당연히 일곱빛농아인교회지”라고 답했다. 


“목사님, 저 벌써 떠나온 지가 20년이 넘었어요. 지금은 강남에 있는 영동교회에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은 “네가 어떻게 농아인교회를 떠날 수가 있니?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달란트가 있는데?”라고 말했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 때 ‘일곱빛동아리’(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봉사전도동아리)에서 수어를 익힌 후 서울중앙교회에서 7년간 봉사했어요. 그때는 교회 5층 전체가 농아인교회였는데 농인, 청인, 농인, 청인 이렇게 동그랗게 앉아서 통역자들이 옆에 한 명씩 붙어서 통역했죠. 그렇게 함께 성경공부도 하고 종로 한복판에 나가서 수어로 찬양하고 전도도 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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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교회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계속해서 봉사해야 하니 번아웃이 찾아왔다. 학원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근처에 있는 교회로 옮겼다. 20년 넘게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일을 그만 두니 집과 가까운 교회를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교회를 물색하던 중, 오래 전 함께 활동했던 목사님의 전화를 받은 것이고, 수십 년간 수어 통역자로 봉사하던 집사님도 누군가 와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방동에 있던 교회도 태릉입구 근처로 이사했다고 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문법이 있다는 것도 조유리 집사 덕에 알게 됐다. 수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의 ‘수어문법’은 국어문법과 차이가 있고 국어의 모든 단어가 다 수어로 번역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조 집사는 학원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 ‘농식수어’를 배우러 다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매일 충정로에 가서 1년간 교육을 받았다. 현재 교회에 수어통역자가 여럿 있지만 농식수어로 통역을 하는 사람은 조유리 집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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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돌아온 교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에전에는 80~100명이 출석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는 200명까지 증가했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40~50명으로 줄었지만 조 집사가 자리를 비운 세월을 포함해 그 이전부터 수십 년간 수어 통역자로 교회를 지킨 이소연 집사, 동아리 후배인 최화정, 심은하 집사가 20년 넘게 묵묵히 봉사해 왔다. 


아무래도 농인들의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어떤 것을 선택할 때 ‘배움’ 자체가 어렵고 기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선교도 쉽지 않았다. 통역사 자격증 시험도 토요일에 치러져, 우리 교단에는 전문 통역사도 없다. 그나마 강원도 강릉에 계신 분이 유일한데, 그분도 재림교인인 남편과 결혼한 후 개종한 분이다. 농인 교회에는 목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교단 내에 농인 목회자가 없다. 통역자들의 봉사가 교회에 그만큼 힘이 될 수밖에 없다.


수어 통역을 거쳐야만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이들,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는 조 집사는 “우리 교회는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고 자랑한다. 몇 년 전에는 장애가 있는 교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필리핀 이주여성인 그의 아내가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온 교인이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고 자기 자녀라고 생각하고 함께 키우고 있을 정도로 가족 이상의 정을 쌓아 왔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분들은 가족과 단절된 경우가 많아요. 가족도 처음에는 어떻게든 소통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점점 대화가 끊긴 거죠. 농인들이 가정 내에서 겪는 소외감과 외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그런데 교회에 오면 수어로 성경말씀도 들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연히 가족보다 더 가까울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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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전해진다”고 말하자 “이런 봉사를 안 해 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실제로 봉사를 하면 내가 받는 게 더 많다”며 “언젠가 학원 학부모를 교회에서 마주쳤다. 그날은 식사당번을 하느라 평소보다 분주했고 제대로 인사도 못했는데 학부모님이 학원에서 보던 모습과 달리 내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깜짝 놀랐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농인들 얼굴만 봐도 행복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시간 속에 내가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조 집사는 “고아와 과부를 우리 곁에 두신 것은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신 것이며, 아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더 큰 사랑을 부어 주시고 더 큰 이적을 보여 주신다”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


또한 “정말 많은 농인이 신앙을 갖고 있다. 청각장애인선교, 농인선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미미하다. 경제적인 지원에서도, 수어 통역에서도 우리 교회가 취약한 부분이 많아 진리를 더 많이 전파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아쉬워하며 “앞으로 더 많은 농인이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젊은 수어 통역자들을 많이 보내 주시길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더욱 성장시키실 거라 믿는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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